성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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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뽀글이 조회 3회 작성일 2020-10-17 07:48: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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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2010 탐사보고, 동명루트를 찾아서

- 동방을 밝힌 성스러운 임금, 동명왕
고구려를 세운 주몽. 삼국사기는 그를 동명성왕이라 칭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주몽과 동명왕을 동일인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고구려 당대의 광개토대왕비문을 보면 고구려 시조 주몽을 추모성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몽은 과연 동명왕일까?
위략과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역사서에는 모두 동명왕을 부여의 건국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주몽이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으로 불리게 됐을까?

- 부여, 감춰져 있던 700년의 역사를 밝힌다
광활한 만주를 무대로 700년간 존속한 나라 부여.
잘 알려지지 않은 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구려)유리왕은 부여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11월에 대소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침범하다가"
- 삼국사기 유리명왕 14년

"고구려가 마한, 예맥과 연합하여 현토성을 공격하자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에게 2만 병사를 주어 현토성을 구원.."
- 삼국사기 태조왕 69년

부여는 인구 8만호에 사방 2천리의 강역을 가진 나라로 같은 시기 인구 3만호에 불과한 고구려보다 훨씬 큰 나라였다.
특히 한반도는 청동기 유물인 세형동검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부여는 철제무기와 마구, 찰갑 등이 출토돼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군사강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최초 답사 동명의 남하루트를 찾는 대장정
부여 동명왕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건국신화에는 동명의 출발지로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
"그가 탁리국에서 남하해 엄호수를 지나 부여를 세웠다" - 논형 길험편
그렇다면 탁리국과 엄호수는 어디인가?
역사스페셜 제작팀은 동명이 출발했다는 탁리국과 그의 남하 루트를 찾아 대탐사에 나섰다. 중국 흑룡강성 부유현에서 송화강을 건너 길림까지 3천 킬로미터, 부여를 세우기 위해 동명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본다.

- 고대국가들의 원류, 부여의 재발견
고구려 주몽의 건국신화는 부여 동명의 건국신화를 차용하여 부여계승 의식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도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칭했으며 가야, 나아가 발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부여에서 나왔으며, 동명왕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부여는 우리 고대국가 형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역사스페셜 23회 – 2010 탐사보고, 동명루트를 찾아서 (2010.1.16 방송)
http://history.kbs.co.kr/
심장을뚫어버린사랑 : 중국은 주변 모든 국가의 역사는 자기들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현재 실 지배하는 지역의 고대 역사니 우리 역사다.
우리한테 조공을 바쳤으니 우리 속국이였으므로 우리역사다.
국경근처에 있었으니 지방정부였을 뿐이다 등등
침략을 막아보고자 건설한 만리장성 넘어의 동이들이
언제부터 중화에서 함께한 형제가 되고
자기들의 역사가 되었는지 원..
이미 뺏긴 고구려역사왜에
발해도.부여도 모두 자기역사라는데
우리나라 역사학사자들은
왜 꿀먹은 벙어리인가
일본이 심어준 어줍잖은 왜곡의 역사에서 좀 밪어나서
진짜 우리의 역사를 찾았으면 좋겠다
오경근 : 근데.. 송호정 교수 저사람은 고조선은 없는 역사라고 말 한 사람 아닌가?
LOL Replay Korea :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와 이어져 있다.
지수신 : 동명왕 설화에 부여의 역사를 끼워맞추려 하니 해석에 무리수가 많아 보입니다.
설화는 말 그대로 설화, 과거의 어떤 역사상이 반영된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지, 그게 곧 역사의 뼈대가 되는건 아닙니다.

고구려 주몽설화만 하더라도 설화의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건국이야기와는 달리
졸본부여 왕의 사위가 되어 나라를 상속받았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앞뒤가 맞는 내용이 엄연히 역사서에 전합니다.
백제 비류/온조 설화도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온조왕조의 본내용과 비교하면 설화의 내용은 역사와는 거리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신라 혁거세, 탈해, 알지 기타 등등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설화는 설화일 뿐이고 역사가 아니라는 굳건한 지론을 가진 송모씨가
또 여기서는 억지를 써 가며 설화에 역사를 끼워맞추려 드니 참 재미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자주 보입니다. 자기모순은 이 종족의 종특인가요?

그 일대에서 '부여'와 발음이 유사한 지명은 富裕縣만 있는게 아닙니다.
합이빈시와 길림시의 중간지점에는 아예 글자까지 똑같은 扶余市도 있습니다.
지금은 '탐사보고' 갈 것도 없이 구글어스만 돌려봐도 다 나옵니다.
어느 동네가 '원조 부여'였냐를 뇌피셜로 상상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그 일대가 죄다 부여국의 중심 세력권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부여와 발음이 비슷한 지명이 있다면 그곳을 부여의 세력권으로 유추함이 타당하지,
왜 거기다 탁리국을 갖다붙이나요?
동명왕이 일종의 정치범이 되어 도망쳐 나온 나라로부터, 말 달리면 하룻길인 곳에 새 나라를 세웠다고요? 동명왕이 바보입니까?
그건 결국 길림시만을 부여 중심지로 하여 부여를 동네국가로 만들기 위한 억지 논리로 보일 뿐입니다.
길림시는 부여의 중심지가 될 수 없는 위치입니다. 부여의 남계라면 납득되겠네요.

송화강 남북의 유물이 비슷해지는 것은, 본래 송화강 북쪽이 중심이었던 부여의 세력이 남쪽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며,
백금보 문화가 곧 부여 문화라고 해석함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남쪽으로 엄리대수를 건넜다'는 설화 속 한 문장에 집착하여, 탁리국이 반드시 부여 중심지의 북쪽에 위치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부여에서 더 북쪽으로 유의미한 거리를 올라가면, 꽁꽁 언 시베리아 벌판밖에 더 나옵니까?
설화에선 동명왕이 탁리국에서 남쪽으로 엄리대수를 건넜다고 했지, 거기서 나라를 세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극적으로 위기를 넘겼다면, 더욱 멀리, 적들이 다시는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도망쳐가야 정상입니다.

동이족의 고대 문명이동은 대체로 서에서 동으로 움직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빛은 동쪽으로부터' 였지만, 동이족 역사에선 '서쪽으로부터' 입니다.
비파형동검 출토분포를 봐도 원조 중심지는 요서지역이고, 점점 동쪽으로 확산되어 일본열도까지 이르는 형세입니다.
'東明'이라는 왕호는 그러한 흐름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쪽 땅을 밝혀준 왕'
뒤집으면, 동명왕은 부여의 서쪽에서 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 서쪽이 어딘지를 특정할 도리는 없습니다.
중국의 기록에서 '北夷'라 칭했으니, 중원 기준으로 북쪽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Laney Kim : 탁리국이 부여 전이라면 고조선은 뭐가 되는거죠?? 탁기국-부여-고구려/백제 이렇게 되는거 잖아요
Laney Kim : 저거 동복 전에는 흉노족이 이주하면서 가져왔다고 했는데??? 뭐가 맞는거죠???? 그래서 신라는 흉노족 후손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kbs역사 뭐였는데...
림준수 : 고구려 백제는 같은 혈통 같은민족..북방몽골계 혈통
신라는 완전 다른 혈통임..저멀리 아랍과 중앙아시아혈통..외모가 백인에 가까운...
독일 공영방송에서 다큐를 방영했는데 내용이 게르만족과 훈족 관련 내용임..그런데 다큐에서 훈족과 신라를 직접 연결시키며 같은 혈통일 가능성을 언급함....고로 지금 우리는 당시 삼국시대를 언급하며 같음민족끼리 이러지만 당시 신라는 고구려백제와은 말도 잘안통하고 외모도 다른 완전 다른 민족이었음
Gaaal B : 1.75배속으로 보면 딱 적당한거같네요
Sonia K : 나는 해방직후 소학교
(국민학교)에입학하였다
그때 배울때 고구려시조
는 동명성왕이라배웠다
가야개마무사 : 만주지방은 진짜 보기만해도 날씨가 광장히 추워보이는데 제작하느라 고생 많으셨을꺼 같네요!!

백제 26대 성왕은 왜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했을까, 부여는 광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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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북 콘서트 광주 편 1부

금강경 27강(25분 화무소화분~26분 법신비상분 강의) - 겉모습으로 부처를 찾지 말라

금강경 제25분 화무소화분
교화하는 바 없이 교화하다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하겠느냐? 참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가 제도할 어떤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곧 아 인 중생 수자가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내가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여긴다. 수보리야, 범부라는 말도 여래는 곧 범부가 아님을 말한 것이니 이름하여 범부라 한 것이다.”


금강경 제26분 법신비상분
법신은 상이 아니다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卽是如來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設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爾時 世尊 而設揭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32상을 구족한 것을 여래라고 볼 수 있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의 설하신 뜻을 아는 바로는 32상을 구족한 것을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고 그렇다. 수보리여, 참으로 그러하다. 32상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32상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야 한다면 전륜성왕도 역시 여래라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수보리 존자가 세존께 사뢰었다.
“제가 세존의 설하신 뜻을 깊이 아는 바로는 상을 구족했기 때문에 여래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법으로 여래를 보아야 한다.
참된 여래는 법을 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본성은 분별로 알아지지 않나니
그것은 분별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본 영상은 산돌 폰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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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 스님 감사합니다
강애란 : 스님의 깨달음말씀 ᆢ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
화개수류 : 뼈만추려 쉽게하시는 법문을 듣고 앞으로 불교가 희망있다고 여겨집니디.
이런 훌륭한 스님이 부산에 계시다니 부산의 복 입니다

스님법문 새기며 늘 챙김합니다
스님 삼배 올립니다
효림성 : 법상스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dabo5354 : 스님 말씀 듣는 시간 너무 편안하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상 : "저것(무아, 우주법계, 바다) 은 이것(생각으로서의 나, 파도) 이지만,
이것은 저것이 될 수 없다."

이것과 저것은 차원이 달라 서로 교섭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일 뿐
P Lee : 편안한법문에삶의리듬을맞추니
오늘도마음이한결편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송죽 : 소중한 법문 오늘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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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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